“발진은 아물었는데 통증만 남았습니다”
피부는 깨끗해졌는데 그 자리가 계속 아픕니다.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따갑고, 밤이면 전기가 지나가듯 찌릿합니다. 진통제를 먹어도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상포진은 피부병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신경의 병입니다. 그래서 피부가 나은 뒤에도 통증이 남을 수 있고, 이 통증은 일반 진통제로 잘 잡히지 않습니다.
신경절에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깨어난 것입니다
어릴 때 수두를 앓고 나면 바이러스가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척수 옆의 신경절이라는 곳에 조용히 잠복해 있습니다.
몸이 힘들거나 나이가 들어 면역이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다시 깨어나, 잠복해 있던 그 신경을 타고 피부 쪽으로 내려옵니다. 신경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염증이 생기니 그 신경이 담당하는 피부 구역에만 발진과 통증이 나타납니다.
발진보다 통증이 먼저 옵니다
이 병에서 가장 헷갈리는 지점입니다. 통증이 먼저 시작되고 발진은 며칠 뒤에 올라옵니다.
그래서 발진 전에 병원을 찾으면 통증이 있는 자리에 따라 엉뚱한 진단을 받기 쉽습니다. 옆구리면 근육통이나 담석, 가슴이면 심장 문제, 허리나 다리면 디스크로 오해받는 식입니다.
며칠 뒤 발진이 올라오면서 그제야 대상포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사이에 치료 시작 시점을 놓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드물게는 발진이 끝내 나타나지 않고 통증만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료는 초기 며칠이 중요합니다
항바이러스제는 발진이 시작된 뒤 이른 시기에 시작할수록 바이러스 증식을 줄이고 신경 손상을 덜 남깁니다. 시간이 지나 시작하면 같은 약을 써도 얻는 효과가 줄어듭니다.
“물집이 좀 더 번지면 가 봐야지” 하고 기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한쪽에만 띠 모양으로 아프고 물집이 잡혔다면 그날 진료를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급성기 통증은 대체로 심한 편이라 통증 조절을 함께 시작하며, 통증이 잘 조절되는 것이 뒤에 남는 신경통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얼굴에 생기면 특히 주의합니다
얼굴·머리에 생긴 대상포진에서 놓치면 안 되는 신호
- 이마·눈 주위나 코끝에 발진이 있습니다 — 눈 침범 위험이 있어 안과 진료가 함께 필요합니다
- 눈이 충혈되고 아프거나 시야가 흐립니다
- 귓바퀴나 귓속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 얼굴 한쪽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 어지럽거나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이명이 생겼습니다
귀에 생긴 대상포진은 안면신경을 침범해 얼굴 마비와 어지럼, 청력 저하를 함께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벨마비와 비슷해 보이지만 치료 방침과 경과가 달라, 귓바퀴와 귓속을 반드시 확인합니다.
대상포진후신경통 — 신경과에서 보는 이유
발진이 아문 뒤에도 통증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지나가면서 신경 자체를 손상시켰고, 그 신경이 계속 잘못된 통증 신호를 보내는 상태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급성기 통증이 심했을수록 남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통증은 일반적인 통증과 성격이 다릅니다.
| 일반적인 통증 | 대상포진후신경통 | |
|---|---|---|
| 느낌 | 욱신거림 · 뻐근함 | 화끈거림 · 전기가 오는 듯함 · 찌릿함 |
| 자극에 대한 반응 | 세게 눌러야 아픔 |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아픔 |
| 진통제 | 잘 듣는 편 | 잘 듣지 않음 |
| 시간대 | 움직일 때 심함 | 밤에 심해지는 경우가 많음 |
옷이 스치는 정도의 약한 자극에도 심하게 아픈 것을 이질통이라고 합니다. 손상된 신경과 척수가 통증 신호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태에서 나타나며, 대상포진후신경통에서 흔히 관찰됩니다.
일반 진통제 대신 예민해진 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계열의 약을 씁니다. 항경련제 계열과 일부 항우울제 계열이 여기에 해당하며, 통증 부위에 직접 붙이거나 바르는 국소 치료를 함께 쓰기도 합니다. 통증이 심하면 신경차단술을 고려합니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적은 용량으로 시작해 몸에 맞춰 서서히 올리기 때문에, 며칠 먹어 보고 “효과가 없다”며 중단하면 치료가 길어집니다.
예방접종
대상포진은 예방접종으로 발생 위험과 후신경통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50세 이상에서 권고되며, 이미 대상포진을 앓았던 분도 재발 예방을 위해 접종 대상이 됩니다.
접종 시기와 종류는 나이와 면역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진료에서 상의해 결정합니다.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것
대상포진에서 가장 아쉬운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발진 전 통증을 다른 병으로 알고 며칠 보내는 것, 그리고 발진이 아문 뒤 남은 통증을 “이제 나았으니 참으면 되겠지” 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남은 통증은 참는다고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신경의 통증에는 그에 맞는 약이 따로 있습니다.
진료에서는 통증의 성격과 분포를 확인해 신경병증 통증인지 판단하고, 얼굴에 생긴 경우 눈과 귀 침범 여부까지 함께 확인해 치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