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를 앓고 난 뒤 세상이 계속 돌았습니다”
일주일 전 감기를 앓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심한 어지럼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멈추질 않습니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세상이 한쪽으로 계속 돌아가고, 구토가 반복되어 눈을 뜨기조차 어렵습니다.
결국 응급실을 찾았지만 CT는 정상이라고 합니다.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며칠 지나 조금씩 나아지긴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완전히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이석증과는 지속 시간이 다릅니다
어지럼은 얼마나 오래 가는가로 상당 부분 갈립니다. 전정신경염은 이 중 가장 오래 가는 쪽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어지럽다“는 것이 이석증과 가장 크게 다른 점입니다. 이석증은 움직이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평형을 담당하는 신경에만 염증이 생긴 것입니다
속귀에서는 두 갈래의 신경이 나옵니다. 하나는 평형 신호를, 다른 하나는 소리 신호를 뇌로 전달합니다. 전정신경염에서는 이 중 평형을 담당하는 전정신경에만 염증이 생깁니다. 소리를 담당하는 신경은 따로 지나가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지럼은 극심한데 귀는 잘 들립니다. 이것이 진단에서 중요한 단서입니다. 만약 어지럼과 함께 한쪽 귀가 안 들리거나 이명이 생겼다면 전정신경염이 아니라 다른 질환을 살펴야 합니다.
원인으로는 몸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하면서 신경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유력하게 봅니다. 감기를 앓은 뒤, 피로가 쌓인 뒤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정신경이 지나는 뼈 통로가 좁아, 부은 신경이 그 안에서 눌리는 것도 증상을 키웁니다.
눈이 저절로 떨립니다
좌우 평형 신호의 균형이 깨지면 눈이 한쪽으로 저절로 밀렸다가 되돌아오는 움직임이 반복됩니다. 이것을 안진이라고 합니다.
안진의 방향과 세기를 보면 어느 쪽 전정신경이 문제인지, 그리고 뒤에서 설명할 뇌 문제일 가능성이 있는지를 함께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뇌졸중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갑자기 시작되어 며칠씩 이어지는 어지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소뇌·뇌간의 뇌졸중이 아닌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뇌졸중 중 일부가 전정신경염과 똑같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팔다리 마비나 발음 이상 같은 눈에 띄는 증상 없이 어지럼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증상만으로는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기 CT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위 사례에서 CT가 정상이었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눈 움직임을 보는 진찰로 감별합니다.
| 전정신경염(귀) | 뇌졸중(뇌) | |
|---|---|---|
| 눈이 따라오는 반응 | 비정상 | 정상 — 오히려 위험 신호입니다 |
| 안진의 방향 | 한 방향으로 일정 | 보는 방향에 따라 바뀌거나 위아래로 나타남 |
| 양쪽 눈높이 | 정상 | 위아래로 어긋남 |
| 걸음 | 한쪽으로 쏠리지만 걸을 수는 있음 | 어지럼에 비해 지나치게 못 걸음 |
“눈이 따라오는 반응이 정상이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부분이 뜻밖으로 들리실 겁니다. 전정신경에 염증이 있으면 고개를 빠르게 돌릴 때 눈이 목표를 놓쳤다가 뒤늦게 따라잡는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 반응이 정상이라면 귀는 멀쩡하다는 뜻이고, 그런데도 심하게 어지럽다면 문제는 뇌 쪽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증상이 함께라면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 어지럼에 비해 혼자 서거나 걷지 못합니다
- 사물이 둘로 겹쳐 보입니다
-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사레가 자주 들립니다
-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감각이 둔합니다
- 평소 없던 극심한 두통이 함께 옵니다
치료 — 초기 며칠과 그 뒤의 원칙이 다릅니다
급성기 — 염증을 빨리 가라앉힙니다
부은 신경이 좁은 뼈 통로 안에서 눌리면 손상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를 되도록 이른 시기에 시작합니다. 발병 초기에 시작할수록 전정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항바이러스제는 이 병의 원인으로 바이러스를 지목하고 있음에도, 연구에서 단독으로 쓰거나 스테로이드에 더해도 뚜렷한 이득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어지럼약은 짧게만 씁니다
이 부분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어지럼·구토를 가라앉히는 약은 급성기 며칠만 씁니다
- 편하다고 계속 드시면 회복이 오히려 늦어집니다
전정신경염의 회복은 손상된 신경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뇌가 한쪽 신호가 약해진 상태에 적응해 균형을 다시 맞추는 과정이 회복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어지럼약은 이 적응 과정을 무디게 만듭니다. 당장은 편하지만 뇌가 적응할 기회를 놓쳐, 몇 달씩 어지럼이 남는 경우로 이어집니다. 약을 오래 드시고도 낫지 않아 오시는 분들이 실제로 계십니다.
재활 — 어지러워도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구토가 가라앉으면 되도록 일찍 몸을 움직이고, 시선과 머리를 함께 쓰는 전정재활운동을 시작합니다. 어지럽다고 계속 누워 계시면 뇌가 적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무리해서 넘어질 정도로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붙잡고 서기, 시선을 한 점에 두고 고개 돌리기처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매일 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회복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 처음 이삼 일 — 구토가 심해 눈 뜨기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대개 이 무렵이 고비입니다
- 일주일쯤 — 벽을 짚고 화장실에 다녀올 정도가 됩니다
- 수 주에서 수개월 — 일상은 가능하지만 빠르게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릴 때 붕 뜬 느낌이 남습니다
재발은 드뭅니다. 이 점은 이석증이나 메니에르병과 다릅니다. 만약 같은 어지럼이 반복된다면 진단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급성기가 지난 뒤에도 어지럼이 만성으로 이어집니다. 검사에서는 회복되었는데 계속 흔들리고 붕 뜬 느낌이 남는 경우로, 지속성 체위지각 어지럼증(PPPD)으로 진단됩니다. 급성기에 지나치게 안정만 취했거나 어지럼약을 오래 쓴 경우에 더 흔합니다.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것
전정신경염은 처음이 가장 무섭고, 그 뒤로는 관리가 결과를 가르는 병입니다.
두 가지만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째, 시작될 때는 뇌졸중이 아닌지 확인받아야 합니다. 둘째, 고비를 넘긴 뒤에는 약보다 움직임이 회복을 이끕니다.
진료에서는 눈 움직임을 확인해 귀 문제인지 뇌 문제인지 감별하고, 급성기 치료와 함께 재활을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