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오래 서 있다가, 채혈이나 주사를 맞다가, 화장실에서 힘을 주다가, 더운 곳에 있다가 —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식은땀이 나며 눈앞이 하얘지더니 잠깐 정신을 잃습니다. 몇 초에서 1분쯤 지나면 스스로 깨어나고, 깨어난 뒤에는 의식이 또렷합니다.
실신 중 가장 흔한 형태이며, 대부분 심장에 병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왜 쓰러지나요 — 시소가 넘어가는 순간
자율신경은 교감과 부교감, 두 갈래가 시소처럼 균형을 이룹니다. 교감이 올라가면 혈관이 조여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집니다. 부교감이 올라가면 반대로 혈관이 풀리고 혈압과 맥박이 내려갑니다.
오래 서 있거나 긴장하는 상황에서는 교감신경이 계속 올라갑니다. 이것이 지나치게 치솟으면 목의 혈관에 있는 감지 기관이 이를 알아채고, 균형을 되돌리려 신호를 부교감 쪽으로 한 번에 넘겨 버립니다.
그 순간 조여 있던 혈관이 풀리고 맥박이 느려지면서 뇌로 가는 피가 부족해집니다. 이것이 미주신경성 실신입니다. 미주신경은 혈압과 맥박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의 이름입니다.
뇌가 잠깐 혈류를 못 받은 것이지, 심장이나 뇌 자체에 병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누우면 다리의 피가 심장으로 돌아와 곧 회복됩니다.
스위치를 넘기는 것은 ’세기 × 시간’입니다
교감신경이 조금 올라간다고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자극의 세기와 그 자극이 이어진 시간이 함께 어느 선을 넘어야 스위치가 넘어갑니다.
같은 채혈이라도 바늘을 보고 놀란 정도가 클수록, 같은 줄서기라도 더 오래 서 있을수록 선에 가까워집니다. 약한 자극도 오래 이어지면 넘어갈 수 있고, 짧아도 아주 강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실조증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쪽은 평소 교감신경 긴장이 계속 높아져 있는 상태를 다루지만, 미주신경성 실신은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 특정 상황에서 한 번에 넘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치료도 긴장도를 낮추는 쪽이 아니라 선을 넘지 않게 상황을 다루는 쪽이 중심이 됩니다.
누구에게 생기나요
특별한 병이 없는 건강한 분에게도 생깁니다. 성인 100명 중 서너 명은 살면서 한 번은 실신을 경험하고, 그중 30% 정도는 다시 겪습니다.
땡볕에 오래 서 있던 학생이 조회 중에 쓰러지는 것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심장에 치명적인 이상이 있거나 큰 병으로 진행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다만 쓰러지며 다칠 수 있어 대처가 필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생기나요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실신을 부르는 대표적인 상황
- 오래 서 있기 — 지하철·버스·강당, 조회
- 더위와 탈수, 무리한 활동 직후
-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곳
- 채혈·주사처럼 무섭거나 아픈 상황
- 대소변을 참는 것,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상황
- 음주 후 소변을 보는 상황 — 남성에게 흔합니다
전조 증상을 알아두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쓰러지기 전에 대부분 신호가 옵니다. 이 신호를 알아채고 바로 눕는 것만으로 부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실신 직전에 흔히 나타나는 신호
- 속이 메스껍고 배가 불편합니다
- 식은땀이 나고 몸이 축 처집니다
-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차가워집니다
- 눈앞이 하얘지거나 시야가 좁아집니다
- 귀가 먹먹하고 소리가 멀게 들립니다
이 전구 증상은 짧게는 수 초, 길면 10분 남짓 이어지다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며 의식을 잃습니다.
이런 느낌이 오면 즉시 눕고 다리를 올리십시오. 앉는 것보다 눕는 것이 확실합니다. 누울 곳이 없으면 쪼그려 앉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쓰러진 뒤에는 대개 수십 초 안에 저절로 깨어나고, 깨어난 직후부터 대화와 상황 판단이 정상입니다. 간혹 몸이 뻣뻣해지거나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종이 인형처럼 축 늘어지는 모습입니다.
누운 상태에서 의식을 잃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앉거나 선 자세에서 생깁니다. 누워 있다 의식을 잃었다면 뇌전증이나 부정맥 같은 다른 원인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반드시 감별해야 하는 실신
대부분은 양성이지만, 심장이 원인인 실신은 위험하므로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 미주신경성 실신 | 주의가 필요한 실신 | |
|---|---|---|
| 상황 | 서 있을 때 · 통증 · 더위 · 배변 | 운동 중 · 누운 자세에서 |
| 전조 | 메스꺼움 · 식은땀 · 창백 | 전조 없이 갑자기 |
| 회복 | 눕히면 곧 회복, 의식 또렷 | 회복이 더디거나 혼란 |
| 동반 | 대개 없음 | 가슴 통증 · 심한 두근거림 |
| 병력 | 젊은 나이부터 반복 | 심장질환 · 급사 가족력 |
운동 중에 쓰러졌거나, 전조 없이 갑자기 쓰러졌거나, 심장질환·급사 가족력이 있다면 미주신경성으로 넘기지 말고 심장 원인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진단하나요
언제·어떤 상황에서 쓰러졌는지가 가장 중요한 정보입니다. 목격자가 있었다면 함께 오시거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어 두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 문진 — 전조 증상, 자세, 유발 상황, 회복 양상, 가족력
- 기립경사검사 — 침대를 세워 실신 상황을 검사실에서 재현해 봅니다
- 자율신경검사 — 혈압·심박 조절 능력을 평가합니다
- 심전도·심장초음파 등 — 심장 원인을 배제합니다
처음 겪는 실신, 점점 잦아지거나 양상이 달라지는 실신, 가슴 통증이나 마비를 동반한 실신, 고령에서의 실신, 최근 약을 새로 쓰거나 바꾼 뒤의 실신은 정밀 검사가 필요합니다.
치료 — 약보다 대처법이 먼저입니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대부분 약 없이 관리합니다.
충분한 수분과 염분이 기본입니다. 탈수는 가장 흔한 유발 요인입니다. 오래 서 있어야 할 때는 다리 근육을 움직이고, 무릎을 굽혔다 펴거나 발끝을 들었다 놓으면 피가 심장으로 돌아갑니다.
전조가 오면 즉시 눕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처입니다. 손을 꽉 쥐거나 다리를 꼬아 힘을 주는 동작도 혈압을 올려 실신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합니다
- 화장실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면 바닥에 매트를 깔아 둡니다
- 음주 후 소변을 보다 쓰러진 적이 있다면 앉아서 보십시오
- 소변을 오래 참지 않습니다
- 장시간 운전은 피하고 중간에 쉽니다
- 실신한 뒤에는 10분 정도 누워 안정을 취한 뒤 천천히 일어납니다
반복된다면 약물치료
위 방법으로도 실신이 자주 반복되고 일상에 지장이 크다면 약을 고려합니다. 혈압약으로 쓰는 베타차단제 계열이 가장 흔히 쓰이며, 일부 항우울제 계열도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실신이 매우 잦고 그로 인해 크게 다친 경우에는 심박동기 삽입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여기까지 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런 경우 진료를 받아 보세요
다음에 해당한다면 확인이 필요합니다
- 실신이 반복되고 점점 잦아집니다
-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 운동 중이거나 누운 자세에서 쓰러졌습니다
- 쓰러지면서 다친 적이 있습니다
- 심장질환이나 젊은 나이의 급사 가족력이 있습니다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것
미주신경성 실신은 흔하고, 대개 위험하지 않으며, 대처법을 알면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는 실신입니다.
다만 “흔한 실신”으로 넘기기 전에 위험한 원인을 먼저 배제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진료에서는 쓰러진 상황을 자세히 확인하고 필요한 검사로 심장 원인을 가린 뒤, 대처법과 생활 관리를 함께 안내해 드립니다.
